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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브르와 '파브르 곤충기'
    문화/문학 2016. 12. 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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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충학자의 대명사인 짐 앙리 파브르. (Jean Henri Fabre)

    아마 파브르 곤충기라는 책 이름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1823년에 태어난 파브르는 1915년까지 장수한 곤충학자입니다.

     

    짐 앙리 파브르는 프랑스 남부의 한 농촌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너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3살 때 부모 곁을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파브르는 어린 시절부터 똑똑했습니다.

    거의 독학으로 읽기를 터득할 정도였지만, 공부보다는 집안 일을 도와야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집안일을 도우면서도 파브르는 반짝이는 돌맹이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느끼고는 주머니에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부모는 당연히 집안을 이끌어갈 장남이 쓸모없는 돌맹이에만 정신이 팔려있다고 야단을 쳤고,  훗날 파브르는 곤충 연구를 하면서도 종종 이런 오해와 비난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가난 속에서도 19살이 된 파브르는 교사가 됩니다.

    당시의 교사는 일당이 평균적인 일반 근로자보다도 훨씬 낮았습니다.

    교사뿐만 아니라 교수도 마찬가지라서, 개인 재산이 없으면 교수 월급만 가지고서는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파브르도 처음에는 대학 교수를 지망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정작 자리를 제안받았음에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교수 월급만으로는 온 식구가 함께 먹고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한 교사로 생활하던 파브르가 곤충 연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849년에 찾아왔습니다.

    코르시카 섬의 한 중학교의 물리 교사로 부임한 파브르는 고향인 프랑스 남부와는 또 다른 이 곳의 특이한 자연 경관과 동식물들의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마침 연구차 그 곳을 방문한 생물학자들과 교루하면서 파브르는 더욱 곤충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열병을 잃고 쇠약해진 탓에 다시 육지로 전근했지만, 이후로도 곤충에 관한 파브르의 탐구열은 식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곤충학은 미지의 학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생물학에서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책에서도 종종 잘못된 주장들이 반복돼 게재되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곤충학을 가장 기본인 관찰에서부터 재구성하는 것이 파브르의 소명이었습니다.

     

    1953년 아비뇽의 고등학교로 부임한 파브르는 본격적인 곤충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나아가 이전처럼 단순히 표본을 만들고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생태를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파브르는 어느 저명한 곤충학자의 책에서 노래기벌이 비단 벌레를 잡아 애벌레의 먹이로 사용하는 대목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 곤충 학자는 노래기벌이 죽인 비단벌레가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썩지 않는 까닭은 일종의 방부제를 주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노력과 관찰 끝에 파브르는 노래기벌이 비단 벌레를 죽여서 방부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일 뿐임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니까 비단 벌레는 살아있는 상태로 노래기벌 애벌레의 식량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파브르는 이 놀라운 사실을 밝힌 논문을 다음 해에 발표했고,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856년에는 프랑스 학술원에서 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버섯과 기타의 곤충의 습성에 대한 여러가지 논문을 계속해서 발표했지만, 파브르의 경제사정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꾸준히 연구를 계속한 파브르는 연구를 시작한지 10여년 만에 과학계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루이 파스퇴르가 파브르를 찾아오고, 프랑스 학술원에서 상을 받고, 레종도뇌르 훈장도 받았고, 급기야 황제인 나폴레옹 3세까지 알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파브르가 교육계를 떠나게 된 계기는 약간 황당했습니다.

    평소의 수업에서도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한 태도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들이 공개 강연에서 여학생들에게 꽃의 수정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부도덕한 인물로 몰아버렸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파브르는 평생의 대작이 된 곤충기의 집필에만 전념했습니다.

     

    그 사이 부인이 사망하고, 65세이던 해에 23세의 여인과 재혼했습니다.

    이 당시의 파브르는 종종 길가에 엎드려 곤충을 관찰하는 탓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쓴 파브르의 곤충기는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한 번씩은 읽어보는 필독서가 될만큼 유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동화책이나 위인전에서 접하는 곤충기는 파브르의 수많은 기록중에서 일부에 불과합니다.

    파브르가 평생에 걸쳐 기록한 이 책은 28년에 걸쳐서 10권으로 간행됐고, 우리 나라에 나온 완역본만 해도 쪽수가 3~4천 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기 때문에 완독한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신념의 곤충학자 파브르의 곤충기를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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