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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디치 가문의 예술가 후원과 르네상스
    써먹기 좋은 정보/알아두면 좋은 상식 2023. 1. 2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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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 시대 도시 국가인 피렌체를 지배하다시피 하던 메디치 가문을 아시나요?

    이 가문은 당대는 물론이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은 예술작품을 창작하도록 지원한 것으로 유명하고 르네상스와 동일어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메디치 가문은 15세기부터 17세기 사이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떤 가문으로, 1530년부터 1569년까지 피렌체 공작의 지위를 세습했고, 1569년부터 1737년까지는 토스카나 대공의 지위를 세습해 통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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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치라는 이름은 1230년의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고,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13세기 이후 피렌체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는데, 은행업으로 로마 교황청과 연계해 부를 쌓기도 했죠.

    14000년께만 해도 두드러진 집안이 아니었던 메디치가문은 가문의 창시자격인 조반니 데 메디치가 삼촌인 비에리 메디치가 교황청 환전 업무를 하던 메디치 은행을 인수해 상업이 번성한 피렌체로 옮겨왔습니다.

    당시의 피렌체에는 은행이 70개가 넘었고, 이 때의 은행은 거대 금융회사가 아니라 대부업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조반니는 나폴리 귀족과 8년간 거래했는데, 이 귀족이 나중에 로마 교황 요한 23세가 되었고, 요한 23세는 메디치 은행에 교황청의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는 주거래 은행의 특권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메디치 은행은 16개 도시에 지점을 둔 최대 은행으로 떠올랐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금융으로 번 돈으로 르네상스를 활짝 꽃피웠습니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의 거장들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분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걸작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럽 각지의 희귀 도서와 고문서를 무아 메디치 도서관을 세웠는데, 이 도서관은 유럽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었습니다.

    피렌체 대성당, 메디치 리카르디 궁, 우피치 미술관 등 피렌체에는 메디치 가문이 남긴 흔적이 가득한데요.

    메디치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은 화가, 조각가 뿐만 아니라 철학자, 시인, 건축가, 과학자 등 유럽 각지의 거장들을 피렌체로 끌어모았습니다.

    15세기의 메디치 가문은 기업가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돈을 버는 것이지만 다방면에서 사회 공헌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한 것이죠. 또한 가문 구성원들 역시 스스로 지식과 교양을 쌓고 예술을 통해 이미지 개선과 새로운 부를 창조해내는 공식도 만들어냈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기업가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했습니다.

     

    이 가문의 뛰어난 인물들은 다른 지배자들처럼 으스대며 예술가를 후원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예술을 이해하고 예수르이 가치를 인정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피렌체 여행을 갔을 때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 한 조각을 꺼내어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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